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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은사 배향 선조

클릭하시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文忠公 (문충공)

龍崗公 (용강공)

文靖公 (문정공)

三溪公 (삼계공)

南溪公 (남계공)

慕軒公 (모헌공)

龜溪公 (구계공)

八松公 (팔송공)

 

 

 

5) 南溪公 (남계공)

 

世代

휘 (諱)

號 (호)

生

卒

관 직

12세

승윤(承尹) 임중(任仲) - 字

남계(南溪)

1541년

1610년

∙進士

 

公은 8∼9세부터 효를 실천하여, 친상을 당한 후 3년간 守墓(수묘)살이로 예절을 지켜 여름에도 상복을 벗지 않고 죽을 먹으며 슬퍼하니 모두 감복했다.

구암 이정 선생 문하에서 수학하고 젊어서부터 경제에 뜻이 있어 「선비는 포부가 커야한다. 어찌 독선에 그쳐야 하는가? 이윤은 책임감을 느끼는 성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伊尹(이윤)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이름은 (尹), 자는 (任)이라 한 것이다」라고 했다. 浮査 성여신, 영무성 하응도(寧無成 河應圖), 모촌 이정(茅村 李瀞), 凌虛 박민, 栢谷 진극경, 竹軒 하성公 등 제현과 교유 선조 조에 진사시에 합격 후 과거는 단념하고 위기학(爲己學)에 전심전력 「학문은 반드시 먼저 마음에서 밝아진 다음에라야 거취 할 바를 알게 되는데 그 操觚 佔畢 16) (조고점필)하는 정도를 가지고 많이 안다고 자랑하고 문장의 솜씨를 팔아먹으면서 명리를 구하는 자는 아예 학문을 하지 말고 그 천성을 온전히 지키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임진란이 일어나 외손 백암 김대명 17)을 도와 창의하고 난이 평정된 후 동헌(洞憲)을 지어 인근 백성을 교화했다.

 

인재 최현公이 公의 학문에 탐복 하여 진주사람 만날 때 마다 「정아무개는 밝음이 완전한 거울이고, 눈금이 확실한 저울과 같은 분이다」고 했다.

 

남계공은 임진왜란 시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김시민 장군을 위하여, 진주 선비 31인의 연명으로 조정에 상소를 올렸으며, 상소에는 김시민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진주판관으로서 사천 고성 진해 등지에서 왜적을 물리쳐 전공을 세운 사실과 진주목사로서 진주성 전투에서 왜적을 물리친 공적을 상세히 기록하고 말미에 "모든 진주 사람들의 뜻이요, 경상도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이라고 하여 진주 사람들을 비롯한 경상도 사람들이 김시민 장군의 공을 높이 기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계공의 상소문18)이 김시민 장군이 임진왜란의 전공으로 1604년 선조 37년에 선무공신 2등으로 포상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1601년, 호성공신도감의궤)

 

bg_09.png 기록 및 유적

구 분

제 목

찬 (撰)

소 재 지

행장

南溪 承尹 行狀

조겸

 

碑

南溪 承尹 墓碣銘

김해 許愈

 

상소문

 

공신도감의궤

서울대학교 규장각

 

 

승윤(承尹)

 

진경(晉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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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任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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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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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익(天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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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봉(吉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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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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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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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止善)

 

 

길보(吉輔)

 

 

 

황 (潢)

 

지수(止守)

bg_08.png

 

능록(能祿)

 

 

 

택 (澤)

 

지기(止器)

 

 

文益漸(女)

 

 

 

 

 

 

 

 

 

 

 

 

 

 

 

 

bg_08.png

이신(以信)

bg_08.png

석좌(碩佐)

 

 

 

 

 

 

 

 

석우(碩佑)

 

 

 

 

 

 

 

 

석찬(碩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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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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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개(承凱)

 

 

 

 

 

 

유 (宥)

 

승열(承說)

 

 

 

 

 

 

밀 (密)

 

승윤(承尹)

 

 

 

 

 

 

안 (安)

 

 

 

 

 

 

 

 

都纘(女)

 

 

 

 

 

 

 

 

 

 

 

 

bg_08.png

제생(悌生)

 

 

 

 

 

 

 

 

 

 

16) 操觚(조고)는 문필(文筆)에 종사(從事)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고, 佔畢(점필)은 글자만 읽고 깊은 뜻은 통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

17) 김대명(金大鳴, 1536∼1603)의 자는 성원(聲遠)이고 호는 백암(白岩)이며, 본관은 울산(蔚山)으로 백야(白也)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6년(중종 31년)에 아버지 찰방 추(樞)의 아들로 진주 백야동(白也洞)에서 태어났다. 김대명은 어려서부터 기의(岐寲)하여 두각이 참연(嶄然)하며 천성(天性)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1603년(선조 36년) 8월 20일에 김대명은 68세의 일기로 떠났고, 후에 진주의 대각서원(大覺書院)에 입사(入祠)되었다.

18) 상소문 원문 및 국역은 종보 제6호 pp14~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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