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혁
淸 溪 書 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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毁撤(훼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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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南書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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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溪書院 |
1833년 |
1868년 |
1963년 |
1994년 |
1. 청계서원 설립의 연혁1)
(1660~1720) |
- 영남사림들이 문충공의 배향을 지속적으로 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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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
- 문충공을 충선공과 병향 논의 ※ 진주사림 통단성도천서원문2)(국역 청계지 24~26page) → 서열상의 문제로 중단 (※단성도천서원통진주향교문) - 영남과 호남의 유생들이 예조에 문충공을 위한 서원 건립 상소 (※덕천서원강회시발문, 국역청계지 27~29p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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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
- 삼가향교와 진주향교가 주동이 되어 진주 서쪽 마동(馬洞)에 청계서원을 세워 문충공의 享祀를 지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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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
- 생원 권사수외 62인이 예조에 생폐(牲幣)와 향촉(香燭)을 보내 줄 것을 건의(※曾禮曹狀 참조) → 예조에서 ‘춘추제사 때 생폐와 향촉을 보내니 길이 공경하라’고 회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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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8년) |
- 은열공, 문충공, 삼계공, 남계공 배향(配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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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
- 모헌공, 송강 하항, 모송재 하인상 追享 (4월 19일) - 구계공은 유림의 동의를 구하는 중 훼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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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
- 국령(國令)에 의하여 훼철(毁撤) |
2. 봉남서당(鳳南書堂)3)
고종 5년(1868년) 청계서원이 훼철(毁撤)된 뒤 은열공의 제사를 모실 사당이 없어 이를 안타깝게 여긴 종인들이 1959년에 진주성지 내에 집터를 구입하여 은열공을 제사 지낼 경덕사(景德祠)를 짓고, 후학을 가르칠 곳은 은열공이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신봉(信奉)한 뜻을 기리어 정교당(正敎堂4))으로,서당의 출입문은 창제문(蹌濟5)門)으로 편액하여 「鳳南書堂(봉남서당)」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6)
1979년부터 1984년 사이에 「진주성 복원 정비사업」을 시행함에 있어 민가 750여 채와 세무서 등 관공서도 철거하면서 진양 정씨재실(봉남서당)과, 진양 하씨 재실을 그대로 둔 것은 문화재 당국에서 정·하 양씨가 진양 대성(大姓)임을 감안한 배려였습니다.(전 문화재관리국장 정재훈씨 談)
• 현재의 터전위에 봉남서당에서 청계서원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경위를 약술(略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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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3월 진주 연계재에서 정재화씨 주재로 종인 약 60여명이 참석하여 봉남서당 신축계획 논의. • 1955년, 1956년, 1958년에 남성동 정재용종인 댁에서 동 안건을 협의 사업추진계획 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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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확보를 위하여 각 소 문중 방문 - 합천 연동 문중 15만원 - 진성 귀내 문중 40만원 - 하동 한재 문중 70만원 - 그 외에도 소 문중 및 개인 등 다수 동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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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지 내 서당 건립부지 333평을 65만원에 매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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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당 신축용으로 사천 소재 한옥(전면6칸, 측면 3칸) 150만원에 매입 → 1961년 3월 해체하여 건립 부지로 이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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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교부에 봉남서당 신축허가 신청 → 6월 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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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덕사 신축용으로 한재 소재 정재완씨 건물 10만원으로 매입 (5만원은 헌성금) • 3월 공사 착공 → 자금 사정으로 중단 • 10월에 춘포공이 농지 매각하여 공사비를 충당 → 공사재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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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이 사적 제118호로 지정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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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남서당 준공 (경덕사, 정교당, 창제문, 등) - 공사대금 약 700만원 - 유공자 : 정재화, 홍두, 천환, 재동, 재룡씨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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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열공 위패 봉안 고유제 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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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3월 15일 - 은열공 춘향제 봉행 (참석 종인 200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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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공보부에서 「진주성 복원정비사업」안을 작성 → 대통령 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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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남서당 보전 추진위원회 구성 - 서당 당장 정재동, -추진위원장 정홍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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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문중별로 공사 분담금 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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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남서당 현상 변경사업 허가 신청 → 수차례 계획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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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공부 허가 - 허가내용 : 경덕사와 내삼문 이전 보수 / 정교당 보수 / 외삼문과 화장실 신축 / 비(碑) 2기 신설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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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렬공 묘정비 제작 발주 계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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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공사도급계약 체결 (계약금 6,0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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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열공 묘정비와 문충공 사적비 건립 |
- 문씨 문중에서 목면사적비 건립을 방해하기 위하여 진주시에 교섭하여 청소차 등으로 출입문을 막아 비(碑)를 운반 할 중장비와 지게차 등의 출입을 봉쇄하고, 60여명이 포진하여 우리 종인들의 출입을 막았으나, 우리 측 종인 200여명을 동원하여 저지선을 뚫고 들어가 오후 4시경 비(碑)를 다 세우고 만세삼창을 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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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공사 (경덕사, 정교당, 비2기, 축대, 담장 등)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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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준씨를 봉남서당 당장(堂長)으로 추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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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청 신축 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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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은사 신축 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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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청 준공 (국고 보조금 6,000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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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은사 준공 → 현상변경사업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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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향 선조 고유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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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향제 봉행 (음, 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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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등기를 위하여 진주시에 등록 - 진양정씨 은열공파 대종회(등록번호 115132 - 38130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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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남서당」현판 교체 - 진양정씨 은열공파 대종회 - 청계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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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정공 계도 선조를 숭은사에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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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당 번와공사 (국고보조금) |
1) 2005(을유보), 뿌리편, 부록 5페이지를 전제 및 편집
2)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에 있는 서원. 1401년(태종 1)에 창건되었으며 문익점(文益漸)의 위패를 모셨다. 1554년(명종 9년)에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했으며, 1612년에 중건했다. 1787년(정조 11)에 다시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권도(權濤)를 추가 배향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해방 후 유림에 의해 복원되었다.
3) 2005(을유보), 뿌리편, 부록 6~8페이지 및 봉남서당 실기 참조,
4) 바른 글을 가르친다는 뜻
5) 출전 / 詩經 大牙 生民之什 公劉, / 蹌蹌濟濟에서 나온 말, 뜻 - 몸가짐이 위엄이 있고 질서 정연함
6) 飛鳳山之南에 祠曰景德이요, 堂曰正敎요, 門曰蹌濟이니合以揭之曰鳳南書堂 [봉남서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