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정씨 유래
정씨의 연원(淵源)
정씨(鄭氏)의 연원은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권1 기이제1 신라 시조 혁거세왕 편에 신라 6부(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 6촌장이 합심하여,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기원전 57년) 4월 박혁거세를 추대하여 왕호를 거서간으로 하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하여 건국하였으며, 이후 유리왕 9년(서기 32년) 봄에 간지부를 본피부로 고치고 지백호선생의 5세 동충(東冲)선생에게 정씨 성을 하사하였다.(=爲本彼部 姓鄭)」에 있으며,
[삼국유사]
돌산의 고허촌의 소벌도리를 정(鄭)씨의 조상으로, 지백호公을 최(崔)씨의 조상으로 기록되어 있는바, 예로부터 삼국사기에 따른다.
시조 지백호公의 휘(諱)는 삼국유사의 신라시조 혁거왕편에 「취(자)산의 진지촌(觜山 珍支村)의 촌장은 지백호(知伯虎)」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지백호 선생의 묘역은 경북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백운대)에있습니다.
진양정씨
진양정씨는 지백호공을 시조로하여 계대를 내려오는 경주정씨로부터 분파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내용과 계대(系代)를 알 수 없으며, 동본의 진양정씨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중과는 동일한 혈연관계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진양(진주)정씨는 조선씨족통보에 19개파, 전고대방과 증보동국문헌비고에는 5파로 구분하고 있으나, 보통 8鄭이라고 하는 8파, 크게는 호장공 자우계, 영절공 예계, 중추원사공 장계, 진산부원군 헌계 4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은열공파(殷烈公派) |
호장을 지낸 정자우(鄭子友)를 시조로 한다. |
충장공파(忠莊公派) |
고려의 건국공신으로 문하 시중평장사를 지낸 정예(鄭藝)를 시조로 한다. |
공대공파(恭戴公派) |
고려 말 통정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 를 지낸 정장(鄭莊)을 시조로 함 |
첨정공파(僉正公派) |
고려 때 첨정을 지낸 정중공(鄭仲恭)을 시조로 한다. |
우곡공파(愚谷公派) |
고려 때 대사헌을 지낸 정온(鄭溫)을 시조로 한다. 정헌(鄭櫶) 계통 |
어사공파(御史公派) |
고려 때 감찰어사를 지낸 정택(鄭澤)을 시조로 한다. 정헌(鄭櫶) 계통 |
지후공파(祗侯公派) |
고려 때 지후를 지낸 정신(鄭侁)을 시조로 한다. |
내부사공파(內府事公派) |
고려 때 판내부사를 지낸 정안교(鄭安校)를 시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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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정씨 은열공파
우리 은열공파 문중은 고려초에 호장(戶長)을 지내신 봉산(鳳山)공 자우(子友)선생을 시조(始祖)로 하여 족보의 계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 동국문헌비고에는 인순(仁順) 선조를 파조로 기록하고 있었으나, 1685년 을축보 편수시 팔송공 필달선생이 인순 선조의 상계 4대를 찾아서 시조 자우(子友) → 한여(漢汝) → 거중(居中) → 국유(國孺)선생을 계대로 하였습니다. (팔송문집 참고)
고종 12년(1875년) 을해보 편수 시 7세이신 검교군감방어사 현휘(玄就)선생이후의 계대는 「지파자멸미상(紙破字滅未詳」(보책의 종이가 훼손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움)로 인하여좌우위보승 중랑장을 지내시고 광정대부(匡靖大夫) 첨의부찬성사(僉議府贊成事)에 추증되신 휘 진경(晉卿)선조를 중시조로 하여 지금까지 계대를 정하고 있다.
파명(派名)인 은열공파(殷烈公派)는 시조 봉산공 자우(子友)선생의 6세(5세손)으로 고려 현종 때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거친 후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올라 거란(契丹)의 침입을 격퇴시킨 공으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올라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에 봉(封)하여지신 휘 신열(信烈)선생의 아호(雅號)에 있다. (2005년 을유보 누보록)
상계 세계도
중·소 문중 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