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은사 배향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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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三溪公(삼계공)
世代 |
휘 (諱) |
號 (호) |
生 |
卒 |
관 직 |
11세 |
밀(密) 숙성(叔成) - 字 |
삼계(三溪) |
1520년 庚辰年 |
1582년 壬午年 |
∙종부시첨정 ∙시강원 문학 ∙사헌부지평 |
경·전에 밝고 식견이 고명하여 몸가짐이 신중하고 절도가 있어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맹자의 성선설과 주자의 「성인을 희망한다 12) .」는 교훈을 볼 때마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일등 가는 사업이 있는데 어찌 다른 것을 구하겠는가?」라고 하였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정아무개는 참으로 아름다운 선비다. 뜻을 가짐이 원대하므로 그 진취성을 헤아릴 수가 없다.」하였으며, 臨終(임종)때 문인과 제자들에게 「내가 보기로는 세상 사람들이 그 祖先의 遺稿(유고)를 가지고 망령되게 없는 사실을 더 보태 가면서, 심지어는 유별난 사람으로 만들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귀신을 속일 수가 있으며 백세를 속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이는 선대를 욕되게 하며 불효 중 큰 불효다」 하고선 저술과 시문을 모두 불태웠다.
周易(주역)의 「너무도 확고하여 뽑을 수가 없다」13) 라는 말에 비유되는 강건함을 보였다.
계묘년(1543년) 진사시 문과에 급제, 종부시첨정, 시강원 문학, 사헌부지평(정5품)등을 지내시고, 외직으로는 익산, 단양, 밀양, 안악 네 고을의 원을 지내셨다. 덕계 오건, 송와 강현 제현(諸賢) 등과 교유, 淸白吏(청백리)로 전해진다.
진양지에 「… 천성이 정성스럽고 곧으며 벼슬에 나아가서는 맑고 조심스러워서 관원이 두려워하고 백성들이 그리워하였으며, 공적이 두드려져서 세 고을을 역임하였으되 추워도 앉을 방석이 없었다. 어긋나게 시류에 따르는 무리를 보면 지위가 있어도 덕을 칭찬하지 아니하였다.…」라고 기록 14)
기록 및 유적
구 분 |
제 목 |
찬 (撰) |
소 재 지 |
비고 |
記 |
三溪亭記 |
巴山 趙昺奎 |
문헌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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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溪精舍 重建記 |
晉山 河謙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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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溪精舍院韻竝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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碑 |
朝鮮 淸白吏 三溪先生 碑 |
현감 이종상 |
진주시 진성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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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溪先生 密 行績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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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 진성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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遺 物 |
분재기15) |
삼계 정밀 |
중앙학연구원 장서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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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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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初九曰 潛龍勿用은 何謂也오. / 子曰 龍德而隱者也니 不易乎世하며 不成乎名하야 遯世悶하며 不見是而无悶하야 樂則行之하고 憂則違之하야 確乎其不可拔이 潛龍也라. 초구에 말하길 '潛龍勿用'은 어찌 이름인고? 공자 말씀하시되 "용의 덕이 숨어 있는 것이니, 세상을 바꾸지 아니하며, 이름을 이루지 아니하여, 세상을 피해 살아도 민망하지 아니하며, 옳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민망함이 없어서,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하면 어겨서, 확고하여 그 가히 뽑을 수 없는 것이 潛龍이라."
14) 鄭密字叔成訓導寬之弟嘉靖癸卯中進士戊午文科天性簡拙莅官淸謹吏畏民懷政績最著歷典三郡寒無坐氈見忤時輩位不稱德官止 宗簿寺僉正號三溪居上寺里 (진양지 제3권 / 인물 / 본조) / 세 고을은 네 고을의 오기인 듯[편집자]
15) 1578년 승업, 승훈 형제에게 삼계공이 재산을 분급해 주는 문서이다. 제사를 받드는 몫을 제외하고는 형제에게 재산을 거의 고루 분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분재기로써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