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조
시조(始祖) 지백호(智伯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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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는 인세(仁世), 시호(諡號)는 문화(文和), 휘(諱)는 낙랑후(樂浪侯) 지백호(智伯虎), 추봉(追封) 감문왕(甘文王)이시다. 삼한시대(三韓時代)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六村長)의 하나인 진지부촌장(珍支部村長)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王)으로 추대(推戴)하고 신라(新羅) 건국(建國)에 큰 공 (功)을 세웠다. 그 공(功)으로 개국(開國)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다.
공(公)의 호양지의(互讓至義)는 신라(新羅) 건국(建國)의 모체(母體)가 되었고, 왕도(王道)를 토착(土着)시켰으며, 한 나라의 역사(歷史)를 창조(創造)한 원훈(元勳)으로서 백성을 예(禮)로 가르치고 부족(部族)의 연맹(聯盟)을 이루었으며, 백성(百姓)들이 그 덕화(德化)를 입어 윤리(倫理)가 바로 섰고 그 넓은 금도(襟度)와 위덕(威德)은 신라(新羅)의 국풍(國風)으로 이어 주었다.
서기(西紀)32년(유리왕 9년)에 진지부(珍支部)가 본피부(本彼部)로 승격(昇格) 개칭(改稱)되고,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지면서 정씨(鄭氏)라는 성(姓)을 하사(下賜)받았다. 서기(西紀) 516년(법흥왕 3년)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서기(西紀)658년(무열왕 3년)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追封)되었다.
공(公)은 6촌장(六村長) 가운데 유일(唯一)하게 묘소(墓所)가 경북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의 백운대산록(白雲臺山麓)에 현존(現存)하여 매년 음(陰) 10월 1일 후손(后孫)이 향사(後孫)하고 있다.
[출전 / 경주정씨문헌공파 제안공 종중]
진양정씨은열공파 시조(始祖) 휘 자우(子友)선조
경주정씨에서 930년경 분파되었다고 전하나, 정확한 년대와 계대는 알 수 없다. 호는 봉산(鳳山)으로 고려 태조조(918년~943년)에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다고 을유보에 기록한다.
진양정씨은열공파 중조(始祖) 휘 진경(晉卿)선조
선계의 자손록에서 7世 휘 현취(玄就)선조 이하의 자손록은 지파자멸(紙破字滅)로 인하여 알 수 없는바, 휘 진경 선조를 중조(1世)로 하여 계대를 정하고 있다. 공의 생몰년대는 알 수 없으며, 관직은 좌우위보승 중랑장이며 광정대부 첨의부 찬성사를 증직 받으셨다.